farewell @ m-sync 20200116

안녕하세요. 소개받은 퇴사 예정자 남현우입니다. 먼저 회사를 떠나는 입장에서 이런 자리를 갖는다는 것이 흔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진심으로 부담스럽고 영광입니다.

대학교 등록금이나 벌 생각으로 두 달만 일해볼까 했던 것이, 조금만 더 해봐야지… 하다가 어느덧 9년 6개월이 되었네요. 처음 입사하고 얼마 안되었을 때, 제 옆에 앉아계시던 분이 출판사 정산을 하다가 어제 매출 50만원 났다며 좋아하시던 기억이 났습니다. 대충 계산해봐도 너무 적은 돈이라서 알바비 받는게 미안할 지경이었던 시절이었어요. 그러던 회사가 어느덧 연매출 1150억! (그것도 K-IFRS 기준!) 참 신기하고 솔직히 좀 대단합니다.

한 회사를 오래 다니다보면, 그리고 그랬을 때에만 알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회사들이 본질을 추구하자고 외칩니다. 사실 본질을 추구하지 말자고 하는 회사는 없죠.

그런데 이게 잘 안돼요. 왜냐하면 우리가 어떤 일을 직접 시작하고 어느정도 손을 더럽혀보기 전까지는 그 일이 얼마나 본질에 가까운지 잘 모르거든요. 어떤 일이 본질에 얼마나 가까운지를 깨닫기까지는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3년, 5년까지 걸렸습니다. 아마 지금 우리가 일상적으로 열심히하고 있는 많은 일들 중에서도 훗날 돌이켜보면 본질에서 크게 벗어난 일이었다, 라고 회상할 것들이 분명 있을겁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우리는 이렇게라도 일을 계속 해야 하는데요.

문제는 이렇게 본질적이냐가 밝혀지는데 걸리는 시간보다, 일반적인 IT 기업 종사자의 평균 재직 기간이 더 짧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현상이 생기냐면, 일이 시작되고, 일이 커지고, 일을 수습하는 것 전부를 경험하는 사람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누구는 회사를 옮겨다니면서 새로운 일을 벌리기만 하고, 누구는 벌어진 일을 수습하려는 회사에 급하게 채용되어 시키는 일만 하다가 지쳐서 나옵니다.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지만… 한마디로 똥을 싸는 사람과 똥을 치우는 사람이 다릅니다.

물론 각각의 경험을 심도있게 해보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러한 경험들을 연결해서 회고해보는 기회를 갖는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를 내기만 하거나 풀기만 할 것이 아니라 둘 다 해보고 채점까지 해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어요. 만약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경험을 통해 틀리지 않는 법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요?

리디에 오래 있으면서 여러 사람들이 들어오고 또 떠나가는 모습을 볼때마다 아쉽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개개인들의 입장에서도 그렇지만, 회사 차원에서도 분명 더 이득이 될 수 있었을테니까요.

저는 “의식적으로” 이러한 경험의 점들을 선분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이 자리에 계신 매니저들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업무에 대한 회고를 더 잘 하고, 채용을 잘 하고, 직원들의 동기부여와 성장을 독려하고자 애쓰는 것. 그러니까 사실은 이게 매니저들이 하는 일의 본질일 지도 모릅니다.

이제 정말 제가 리디를 졸업한다는 것이 실감이 나네요. 제 인생의 가장 활력 넘치는 시절을 후회없이 보낼 수 있도록 함께 해주신 많은 분들, 그리고 그런 회사를 만들어주신 배기식 대표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